
우리는 정의를 가격으로 환산하는 일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정의는 돈으로 살 수 없고, 윤리는 거래 대상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셔로**는 이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이 드라마는 정의를 사고파는 세계를 상상하지 않는다. 대신 정의를 실행하는 데 반드시 비용이 드는 현실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끝내 하나의 질문으로 모든 서사를 수렴시킨다. 정의는 얼마짜리인가. 이 글은 캐셔로가 왜 이 질문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질문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 분석한다.
서론: 정의를 숫자로 묻는 순간의 불편함
캐셔로의 세계에서 정의는 감정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는 항상 비용을 요구한다. 주인공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힘을 쓰는 순간,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다음 선택의 가능성도 함께 사라진다. 이 구조는 정의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지불 가능성’의 문제로 전환한다. 시청자가 느끼는 불편함은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는 정의가 값비싼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명확한 숫자로 마주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론: 정의가 가격을 갖게 되는 구조
캐셔로가 던지는 질문은 개인에게 향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한 개인이 정의를 위해 얼마를 희생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왜 정의의 비용이 개인에게 집중되는지를 묻는다. 주인공이 정의를 실행할수록 가난해지는 구조는, 사회가 문제 해결을 얼마나 쉽게 개인의 선의에 외주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정의의 가격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제도가 작동하지 않은 결과다.
이 세계에서 돈이 많은 사람은 더 강한 정의를 실행할 수 있고, 돈이 없는 사람은 정의를 선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이는 정의가 평등하다는 믿음을 무너뜨린다. 캐셔로는 이 불평등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의 실행 능력 자체가 계급화되는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의가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정의가 비쌀수록, 그것은 소수의 선택지가 된다.
더 나아가 이 질문은 책임의 문제로 확장된다. 정의에 가격이 붙는 사회에서는 실패의 비용 역시 개인이 감당한다. 주인공이 실패했을 때, 사회는 구조를 바꾸기보다 영웅의 한계를 탓한다. 이는 정의의 비용뿐 아니라, 실패의 대가까지 개인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캐셔로는 이 지점에서 정의의 가격이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개인의 삶 전체를 담보로 삼고 있음을 드러낸다.
결론: 정의의 가격을 묻는 사회가 선택해야 할 방향
캐셔로가 끝내 남기는 질문은 도발적이지만 공허하지 않다. 정의는 얼마짜리인가라는 물음은 정의를 사고파는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이 아니다. 오히려 이 질문은 지금까지 우리가 정의의 비용을 얼마나 무책임하게 개인에게 떠넘겨 왔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정의에 가격이 매겨질수록,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든다.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성취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 데 있다. 캐셔로는 정의의 가격을 계산해 주지 않는다. 대신 그 계산을 개인에게 맡기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정의가 개인의 통장에서 빠져나가며 유지되는 한, 영웅은 계속 소모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작품은 말한다. 정의의 가격을 묻기 전에,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고. 이 질문이 남는 순간, 캐셔로는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사회적 문제 제기로 완성된다.